『팩트풀니스』를 읽고

팩트풀니스. 책 이름 한 번 발음하기 참 어렵다. 이 이상한 단어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막상 본문을 읽다보니 “사실충실성”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더라. 그렇다고 책 제목을 “사실충실성”이라고 짓자니 뭔가 좀 애매했겠지. 출판사도, 번역가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아무튼.

책 띠지에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가 추천했다는 둥 온갖 마케팅 미사여구를 잔뜩 써놓았길래 개인적으로 겉모습이 썩 끌리진 않았는데, 책 앞 부분 읽고 재밌어서 쉽게 놓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쭉 읽었다. 간만에 재밌게 읽은 책이라 블로그에 간단히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말: 13개의 질문

이 책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세계에 관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몇가지 문제를 던지고 시작한다.

여기서 내가 문제를 풀어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3지 택일 객관식인데 이렇게 맞추질 못하다니. 솔직히 거의 다 틀렸다.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책에 소개된 질문지에서 몇개만 가져와봤다.

  •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20% / 40% / 60%)
  •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저소득 국가 / 중간 소득 국가 / 고소득 국가)
  •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거의 2배로 늘었다. / 거의 같다. /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몇 세일까? (50세 / 60세 / 70세)
  • 지난 100년간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2배 이상 늘었다. / 거의 같다. / 절반 이하로 줄었다.)
  •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 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20% / 50% / 80%)
  •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 (9년 / 6년 / 3년)
  •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20% / 50% / 80%)

난 물론 대부분 추측으로 답했다. 그리고 매우 많이 틀렸다.

다행히 위로(?)가 되는 건, 이 책의 저자가 2017년에 14개국 약 1만 2천명에게 이 질문지를 던졌는데 12개 문제 중에서 사람들의 평균 정답 개수는 2개였으며, 만점은 심지어 한 명도 없었고, 15%는 빵점이었다고 한다. 이건 읽지 않고 찍는 것보다 못한 수치다.

결국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세계에 대해 엄청 오해하고 있음을 인지하자고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본론에 들어간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

우리는 전 세계 국가를 구분할 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하곤 하는데, 저자는 이 점을 비판한다.

네 단계 소득 수준에 따른 인구 분포

실제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은 대부분은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렇게 전 세계 국가를 선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이유가 우리의 간극 본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이유를 총 10가지의 본능(instinct)으로 정리했다. 우리의 본능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그리고 그걸 주의하기 위해 어떤 점을 명심해야 하는지 각종 사례와 도표를 예로 들어 짚어준다.

결론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옮겨 적어놓았는데, 적고 보니 실제 사례를 보거나 책 본문을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겠다는 생각은 든다.)

1. 간극 본능 (The Gap Instinct)

어떤 이야기가 간극을 보여줄 때 현실은 극과 극으로 갈리지 않으며 대다수는 그 중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보아야 한다.

  • 평균 비교를 조심하자. 분산을 살펴보면 겹치는 부분이 보이고, 의외로 둘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 극단 비교를 조심하자. 집단이든 개인이든 상위/하위 계층이 있게 마련이다. 그 차이가 심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중간층에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가 왜곡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모든 게 다 똑같이 작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 부정 본능 (The Negativity Instinct)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보다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호전되는 상황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온갖 부정적인 뉴스에만 인상을 받기 쉽다. 부정 본능을 억제하려면 나쁜 소식에 대해 “예상”해야 한다.

  • 현 수준(나쁘다)과 변화의 방향(나아진다)을 구별하자. 상황은 나아지는 동시에 나쁠 수도 있다.
  • 좋은 소식은 뉴스가 안 된다. 그래서 뉴스는 거의 항상 나쁜 소식이다. 나쁜 소식을 볼 때면 같은 정도의 긍정적인 소식이 뉴스에 나왔을지 생각해보자.
  • 점진적 개선은 뉴스가 안 된다. 오히려 개선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문제가 뉴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나쁜 소식이 많아졌다고 해서 고통이 더 커진 건 아니다. 세상이 더 나빠진 게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더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장밋빛 과거를 조심하자. 사람들은 유년의 경험을, 국가는 자국의 역사를 곧잘 미화한다.

3. 직선 본능 (The Straight Line Instinct)

어떤 추세선이 있을 때 그 선이 계쏙 직선으로 뻗어나가리라 단정하지 말자. 그런 선은 현실에서 매우 드물다.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직선이라고 단정하지 말자. 많은 추세가 직선보다는 S자 곡선이나 미끄럼틀 곡선, 낙타 혹 곡선, 2배 증가 곡선을 그린다. (생후 6개월까지의 성장 속도를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는 아이는 없다.)

4. 공포 본능 (The Fear Instinct)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반드시 가장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폭력, 감금, 오염을 두려워하는 자연스러운 본능 탓에 우리는 그 위험성을 과대평가한다. 공포 본능을 억제하려면 위험성을 계산해야 한다.

  • 세계는 실제보다 더 무서워보인다. 언론에 걸러진 무서운 것을 보고 듣기 때문이다.
  • 어떤 대상의 위험성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위험과 그것에 노출되는 정도를 합쳐 결정된다. (위험성 = 실제 위험 x 노출)
  • 실행하기 전에 진정하자.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가급적 결정을 유보하자.

5. 크기 본능 (The Size Instinct)

어떤 수치가 있을 때 그게 인상적으로 보이더라도 막상 관련 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면 정반대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크기 본능을 억제하려면 비율을 고려해야 한다.

  • 비교하자. 큰 수는 항상 커 보인다. 수치가 달랑 하나만 있으면 오판하기 쉬우니 의심해야 한다. 비교하고, 어떤 수로 나눠보아야 한다.
  • 여러 항목에 대한 수치가 나열되어 있으면 그중 가장 큰 항목들부터 처리하자. 그 몇개가 나머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할 가능성이 높다.
  • 총량과 비율은 완전 다른 것이고, 크기가 다른 집단을 비교할 때는 비율이 더 의미 있다. (예: 집단간 비교 시 1인당 수치)

6. 일반화 본능 (The Generalization Instinct)

어떤 설명이 ‘범주’를 이용할 때 그 범주가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일반화 본능을 억제하려면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자.

  • 집단 내 차이점을 찾아보자. 특히 집단이 클 때는 더 작은 집단으로, 더 정확한 범주로 나눌 방법을 찾아보자.
  • 집단 간 유사점을 찾아보자.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서 매우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 내 범주가 적절한지 점검할 수 있다.
  • 집단 간 차이점을 찾아보자. 한 집단에 해당하는 것이 다른 집단에도 해당한다고 단정하지 말자.
  • 다수에 주의하자. 다수는 절반이 넘는다는 뜻일 뿐이다. 그 다수가 51%인지, 99%인지, 그 중간 어디쯤인지 질문해봐야 한다.
  • 생생한 사례에 주의하자. 생생한 이미지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만 일반 사례가 아니라 예외일 수 있다.
  •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항상 호기심을 갖고 겸손한 자세로 생각해야 한다.

7. 운명 본능 (The Destiny Instinct)

우리 세계의 변화가 다소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에 국가, 종교, 문화 등의 요소가 늘 똑같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자.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사소하고 느린 변화도 조금씩 쌓여 결국 큰 변화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점진적 개선을 추적하자. 매년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수십년 쌓이면 거대한 변화가 될 수 있다.
  • 지식을 업데이트 하자. 어떤 지식은 유통기한이 짧다. 특히 기술, 국가, 사회, 문화, 종교는 끊임없이 변한다.
  • 윗 세대와 이야기해보자. 가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윗 세대의 가치와 지금 내 가치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자.
  • 문화가 변한 사례를 수집하자. 문화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8. 단일 관점 본능 (The Single Perspective Instinct)

단일 관점은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 “아이한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문제를 여러각도에서 봐야 더 정확하게 현실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단일 관점 본능을 억제하려면 망치가 아닌 연장통을 준비해야 한다.

  • 생각을 점검하자.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얼마나 우수한지 보여주는 사례만 수집해서는 안 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점검하게 하고, 내 생각의 단점을 찾게 하자.
  • 내 분야를 넘어서까지 전문성을 주장하지 말자. 내가 모르는 것에 겸손해야 한다. 동시에 타인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그 한계에 주의하자.
  • 도구를 잘 다룬다면 그 도구를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사용할 수 있는 만능의 도구는 없다.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동료를 찾아보자. 다른 분야의 생각도 마다하지 말자.
  • 수치를 보되, 수치만 보지 말자. 세계를 수치 없이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진짜 삶을 말해주는 수치를 사랑하자.
  • 단순한 생각과 해결책을 조심하자. 역사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복잡함을 끌어안고 여러 생각을 섞어 절충하자.

9. 비난 본능 (The Blame Instinct)

어떤 희생양이 이용되고 있을 때 그것을 알아보아야 한다. 특정 대상을 비난하다 보면 다른 이유에 주목하지 못해 앞으로 비슷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지 못할 수 있다. 비난 본능을 억제하려면 희생양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자.

  •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자. 나쁜 일은 애초에 의도한 사람이 없어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 상황을 초래한,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힘을 쏟자.
  •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을 찾자. 어떤 사람이 자기 덕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주장하면, 그 사람 없이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시스템에도 공을 돌려야 한다.

10. 다급함 본능 (The Urgency Instinct)

지금 어떤 결정이 다급하게 느껴지더라도 침착하자. 실제로 다급히 결정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 심호흡을 하자. 다급함 본능이 발동하면 다른 본능도 깨어나 분석적 사고가 멈춘다. 일단 시간을 갖고 정보를 더 찾자.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다급하고 중요하다면 데이터를 잘 따져봐야 한다. 관련은 있으나 부정확한 데이터, 정확하지만 관련 없는 데이터를 조심하자. 관련 있고 정확한 데이터만 쓸모가 있다.
  • 점쟁이를 조심하자. 미래 예측은 늘 불확실하다.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 예측을 경계하자.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요청하고 그 예측이 이전에는 얼마나 정확했는지 확인하자.
  • 극적 조치를 경계하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검증된 생각인지 확인해야 한다.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개선은 극적이진 않지만 대개 그 효과가 더 크다.

사실충실성 실천하기

위에서 우리가 이 세계를 정확히 보지 못하는 10가지 이유를 설명했으니, 마지막 장에서는 어떻게 사실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교육에서, 업계에서, 언론인/활동가/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언을 하며 책이 마무리 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교육’ 파트였는데, 내가 그만큼 평소에 교육에 가치를 더 많이 두고 있어서 그렇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이 말하는 ‘사실충실성’이라는 것도 결국 비판적 사고의 일부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새로운 개념은 아닐 거다.

다만 여기에 덧붙여 저자가 강조한 점은 “겸손”과 “호기심” 이다.

  • 겸손이란 본능적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말하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과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정확한 GPS가 길 찾기에 더욱 유용하듯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은 삶을 향해하는 데 더욱 유용하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다. 오히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명확히 보일 것이다.


글쓴이 : 한스 로슬링

이 책의 저자는 2017년 세상을 떠난,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이라는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자인데, 실제로 『팩트풀니스』 책 내용을 기반으로 비영리 단체인 갭마인더(Gap Minder)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갭마인더는 Trendalyzer라는 시각화 도구를 개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갭마인더(Gap Minder)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팩트풀니스』에서 소개한 각종 사례를 실제 데이터 시각화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TED에서 강연도 많이 했으니 찾아보자.

아무튼 간만에 정말 재밌는 책을 읽었고, 주변에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다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팩트풀니스

⭐⭐⭐⭐⭐

추천 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