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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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TI 심리검사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니지. 사실 MBTI 검사는 언제나 인기였다.

SNS에 본인 MBTI 유형 올리면서 그 유형에 대한 설명을 첨부하는 경우도 있고, 각 유형 별로 특징에 대한 “밈”도 엄청 많이 떠돌고 있다. 어떤 유형이랑 연애하면 이런 패턴이라는 둥, 어떤 유형이 돈을 가장 잘 벌고 어떤 유형은 돈을 못 번다는 둥, 어떤 유형끼리 여행을 가면 궁합이 좋다는 둥 혹은 갈등이 생긴다는 둥…

그런데 한쪽에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MBTI에 열광하는 현상을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혈액형, 별자리와 다르지 않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형론일 뿐이고 사람을 설명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식으로 MBTI를 무시하는 거다. MBTI를 앞장서서 비판하는 전문가 집단은 보통 과학적 방법론을 앞세우는 연구자들, 대표적으로 심리학자들이다.

이런 글도 있더라.

물론 이런 비판적 사고는 언제나 환영이다. 나도 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MBTI 검사가 완전히 무의미하다(totally meaningless)고 얘기하는 자극적인 제목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저자가 이 이상의 발전적인 논의를 제시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데에 아쉬움이 크다.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우습게 만드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니까. (지나가는 심리학과 전공생 앉혀 놓고 MBTI 비판하라면 더 신랄하고 속 시원하게 비판할 능력자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좀 다른 방향으로 포스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MBTI 검사는 너무나 훌륭한 검사다.”

우선 사람들이 MBTI를 무시하는 근거 <MBTI 검사는 왜 완전히 무의미한가?> 라는 글의 꼭지를 가지고 하나씩 다시 생각해보자.

MBTI를 무시하는 근거 1 :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기초해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더 엄밀히 얘기하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MBTI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칼 쿠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실험과학이 사화과학 연구 방법론의 주류가 되기 이전에 자기 나름의 경험을 가지고 MBTI에서 얘기하는 성격 유형론을 정리했다. 그래서 엄격한 실험을 했다거나 통계적인 차이를 보기 위해 정량적인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검증된 이론”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엔 “과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통계적 방법론에 기대서 연구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연구 결과도 결국 “이런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개념은 이런 개념에 이런 영향을 주고 뭐 이런 조절효과와 매개효과가 어쩌구 저쩌구…”… 이런 구질구질한 설명을 하면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모으는 데이터도 결국 설문지 기반인 게 대부분이고. 그렇게 해서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가 마련되면 좋은 이론이고, 이런 근거 없이 무작정 주장하는 건 이론이 아니라는 얘기란 말인가.

어쨌든 이론은 복잡한 현상을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면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모델로 현실에서 이런저런 장면에 활용해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이론 아닐까. MBTI는 복잡한 사람들의 성격을 단순한 모델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훌륭한 검사라고 생각한다.

MBTI를 무시하는 근거 2 : 잘못된, 한계가 있는 이항 선택을 사용했다…?

MBTI는 네 가지 영역에 대해서 이쪽 아니면 저쪽(예: 외향성 vs 내향성)이라는 이분법적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이 MBTI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성격에서 순수한 외향성이나 순수한 내향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외향적이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내향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당연한 얘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MBTI 검사를 해보면 알겠지만 결과는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나올 거다. (이건 진짜 MBTI는 아니고, 그 개념을 차용해서 만든 무료 온라인 검사 16 Personalities 결과다.)

이 결과를 보면 결국 ENTP 유형인데, 특히 N 성향은 강하지만 I와 T 성향은 사실상 중간 어딘가에 있다. 완전히 외향적(E)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내향적(I), 외향적(E)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E에 가깝다” 정도의 결론이다.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개념과 그를 둘러싼 이론들이 존재하고, 이제는 “유형”이 아닌 “차원”적인 모델로 설명하는 게 대세이긴 하다. 그런데 이건 너무 복잡하고 (물론 성격은 복잡한 게 맞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을 단편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싶은 욕구와 본능이 있다. 그걸 충족해주는 건 결국 유형론이다. 유형론이 내용이 좀 부족할 순 있어도 사용하기 편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의 성격을 연속적인 속성으로 설명하려면 외향성은 100명중 60등 정도, T점수(표준점수)로 몇 점이라 사실상 거의 보통 수준이긴 한데 살짝 외향적일 수도 있다? 그때그때 맥락 따라 다르다, 다른 성격 요인들과 다 종합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뭐 이런 의미 없는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게 된다. 이런 설명 듣고 싶은 수검자가 있을까.

MBTI는 글자 네 개 만으로 어떤 사람의 성격을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많은 맹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커뮤니케이션 할 때 편리한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훌륭한 심리검사라고 생각한다.

MBTI를 무시하는 근거 3 : 일관성 없고 부정확한 결과를 제공한다…?

이건 결국 심리 검사가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신뢰도와 타당도를 확보했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그렇다면 아래 기사를 읽어 보자.

“인터넷 MBTI는 도용된 가짜 검사”···전문가가 본 오해와 진실 [출처: 중앙일보]

사실 이 기사는 요즘 MBTI 개념을 차용한 16 Personalities 무료 검사가 유행하자 우리나라에서 MBTI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어세스타>에서 이 흐름을 마케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진짜 MBTI는 우리가 파는 유료 검사야!”라는 메시지를 어필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매우 시의적절하고 훌륭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지금은 충분히 신뢰도, 타당도를 확보했다고 하니까… 일관성 없고 부정확한 결과를 제공한다는 비판은 조금 접어두자.

내가 MBTI를 좋아하는 이유 : 검사를 실시한 사람이 결과를 해석할 때 즐겁다.

MBTI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심리검사 중에 MBTI보다 재밌는 검사가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내 성격을 확인해보기 위해 실시하는 검사 중에서 말이다.)

잘 와닿지 않는 어려운 척도 이름 잔뜩 있고, 복잡한 숫자로 설명하는 거보다 MBTI처럼 유형으로 설명하는 게 확실히 기억에도 잘 남고, 이와 관련한 컨텐츠를 재생산하기도 좋다. (사실 성격을 유형으로 설명하는 검사 중에 MBTI 외에 그나마 유명한 검사로 “애니어그램”도 있긴 한데, 이 검사는 뭔가 좀 영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너무 많아서 개인적으로 애니어그램은 별로 안 좋아한다.)

아무튼 심리검사라는 게 결국 목적이나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로 MBTI를 한다. 제발 이 사실을 인정하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이상한 정신적 증상이나 장애를 점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채용 장면에서 보는 인성검사 같은 것도 아니니까. “마음사랑”이라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MMPI나 CPI, “어세스타”에서 판매하는 FIRO-B, CPI 이런 검사들은 결코 MBTI의 대안이 될 수 없다. MBTI보다 재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16 Personalities는 사실 위 영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사 MBTI이지만, 해석 컨텐츠가 너무나 풍부해서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유명인이나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와 같은 픽션에서 어떤 캐릭터와 유사한지도 알려준다. 한국어로 번역을 제공하는 사이트이긴 하지만, 영문 페이지로 들어가면 관련 아티클도 엄청 많고(예: 성격유형에 따른 음악 취향 Music Preferences by Personality Type), 전세계 국가들의 데이터를 계속 모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어떤 유형이 많은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엄격하고 정확하게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만큼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재밌는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대중이 소비하기에 너무나 좋은 심리검사다.

MBTI가 근거 없는 심리검사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꼭 묻고 싶다. MBTI 검사보다 예쁘고 직관적인 검사 결과, 풍부한 해석 컨텐츠를 제공하는 무료 심리검사가 있냐고. 과학적 근거와 엄정성을 따지는 사람들이 심리검사를 만들 때 MBTI(혹은 16 Personalities)가 제공하는사용자 경험이나 서비스 퀄리티를 본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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