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되어버린 국민청원 (광장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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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 동안 20만 개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들이 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네이버와 페이스북 등 아이디와 연동할 수 있고 익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이대로 괜찮겠냐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청원(게시글)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국민청원에 아무리 막장의 글이 올라와도 특별한 제제 없이 이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廣場)의 의의와 기능, 그리고 그 잠재력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장이 되어버린 건 사실이다.

사람들이 쓴 글을 찾아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글이 많이 보인다. 여기 우리 사회의 쓰레기들을 만나보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반드시 쓰레기가 나오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다.

미국 백악관에서도 위 더 피플 (We the People)이라는 이름의 국민청원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도 말도 안 되는 청원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 중에 좀 특이하고 재밌는 청원의 예가 있어서 소개해본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데스 스타(Death Star)’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은 실제로 필요한 서명 수를 초과해서 백악관의 폴 쇼크로스 행정관리예산국 과학·우주분과장이 아래와 같이 답을 하기도 했다.

정부는 청원자들과 일자리 창출과 국가 안보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있지만
데스 스타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데스 스타를 지으려면 85경 달러 이상이 드는데
정부는 재정적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이려고 노력 중이며
행성 파괴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벌써 축구장 크기의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있고
레이저를 쏘는 로봇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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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광장의 순기능을 믿어보자

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일종의 광장(廣場)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장은 소통의 공간이다. 단순히 넓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참여하는 공간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광장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정보가 오고 가며 사회의 담론이 형성되곤 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고대 로마의 포럼(forum), 중세시대 이후 플라자(plaza)도 모두 같은 개념일 거다.

그리고 이러한 광장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은 연설이나 집회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연설이 펼쳐진다.

이런 연설과 집회는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전 세계의 민주화 운동들이 어디서 벌어졌는지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촛불집회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됐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걸읍시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한 분만 나오셔도 좋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이번 주, 다음 주, 그 다음 주, 광화문을 우리의 촛불로 가득 채웁시다.

촛불시위를 처음 제안한 네티즌 ‘앙마’의 호소문 발췌

국민청원 게시판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추천을 모아 일종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이렇게 정부에서 공식적인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면 별 미치광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들에는 사람들이 결코 모일 리 없다. 바꿔 말하면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는 뜻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쓰레기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며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숨어 있었는지 새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어쩌면 계속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청원이 이렇게 쓰레기장처럼 운영될 거면 차라리 폐지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럴 땐 ‘국민청원 폐지’ 청원을 올려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몇 표의 추천을 받을지 지켜보면 될 일이다.

나는 우리가 계속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민청원도 그러한 광장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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