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를 읽고

최근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를 읽었다.

김소연 시인은 약 10년 전 『마음사전』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단어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책인데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 깊게 읽었고, 그래서 이후에 김소연 시인의 시집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이후에 쓴 에세이 『시옷의 세계』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작년에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굉장히 무거운(?)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바로 구매했다.

무려 사랑에 대한 책이라니. 말 하나 고르기 위해 삶을 살고, 또 어떻게든 자기 삶을 말로 표현해야만 하는 시인이 무려 사랑에 관한 책을 썼다니.

난 웬만한 에세이를 읽으면 책장을 가볍게 술술 넘기는 편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았고, 얼마 전에야 비로소 다 읽게 되었다. 문장이 어려워서 빨리 읽지 못한 게 아니다. 글쓴이의 산문을 하나 읽을 때마다 나도 내가 해왔던, 그리고 앞으로 하게 될 사랑을 꼽씹느라 조금 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제 다 읽었으니 독후감이라는 걸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프롤로그, 그리고 이어서 1-4장(각 장마다 짧은 에세이들이 몇 편 속해있고),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이곳에 옮겨 적는 것으로 내 독후감을 대체해야겠다.


p. 9-13.

Prologue. 사랑의 적들

사랑에 대한 산문을 쓰겠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면, 둘 중 하나는 표정을 찡그리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응한다. 왜 사랑 타령을 하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멜로melo’적인 사랑 타령이겠거니 지레 거부감을 드러낸다. 식상해서 도저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표정임에 틀림없다.

멜로. 원래는 ‘노래’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멜로드라마는 노래가 곁들여진 연극이 그 기원이다. 프랑스혁명 이후부터 흥행하기 시작한 멜로드라마는 기존의 정통극과 달리 통속성과 오락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통속성과 오락성은 멜로드라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스토리텔링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후로 대중이 가장 잘 몰입하고 가장 손쉽게 음미하는 소재가 되었다.

멜로드라마처럼 사랑을 도구로 삼아 사랑을 소비해온 문화들을 우선 사랑의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사랑을 낭만적 영역이라 치부하고 탐구를 외면해온 시선 역시 사랑의 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멜로드라마의 세례를 받고서 허구적인 사랑 놀음에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사이에, 우리는 그와 비슷한 격정적인 감정만을 사랑이라며 동경해왔다. 심장이 짜릿한 설렘과 심장이 저릿한 통증을 함께 겪고 싶다고 막연하게 사랑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거기에 어떤 약속과 어떤 책무가 뒤따르는지에 대한 예상은 그다음 순위의 관심으로 미뤄놓지는 않았을까.

사랑도 상품에 불과하다. 역사라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사회가 생산해낸 상품이다. 사랑에서도 재고 정리가 한창이고, 토크쇼, 신문, 잡지는 전통적인 사랑의 규범을 떨이로 팔아 치우고 있다.

볼프강 라트,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 장혜경 옮김, 끌리오, 1999, p. 315.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부터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 바로크와 로코코와 낭만주의를 지나, 니체와 프로이트를 지나, 사랑의 개념이 어떻게 다른 곳을 갈아입으며 생산되어왔는지를 탐구한 볼프강 라트도 ‘닫는 글’에서 최근까지의 사랑을 위와 같이 초라하게 요약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도 소비한다. 사랑의 대상을 물건 고르듯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 데이트를 하고 프러포즈를 하는 과정을 수순대로 해낼 수 있도록 마련된 상술商術,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의례를 둘러싼 산업들. 도리스 레싱은 1941년 즈음에 쓴 자신의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당시에 둘째를 낳는 건 시대정신이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젊은 부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 하나 더 낳자. 젊을 때 다 끝내버리는 거야.”

도리스 레싱, 「나의 속마음」,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시대의창, 2018, p. 23.

소비자본의 소비 논리를 따라서 우리가 사랑을 완수해왔음을 고백하는 경우는 이 밖에도 무수하다.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사랑을 소비할 줄 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작동되었다. 이렇게 사랑의 적을 따라가며 사랑을 완수하고 있으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울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주제로 소설과 시가 끊임없이 새로 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철학자와 과학자가 서로의 영역에서 사랑의 실체에 대하여 탐구하고 사유하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새로울 것이 없다는 편견 속에 갇힌 채, 더 이상 사유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데에서 그 가치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이성애 중심과 남성 중심의 오래된 권력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로 간주하여, 사랑을 언제나 새로이 포장해온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랑에 무능력했던 나의 경험들이 사랑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해왔다. 언젠간 이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을 멜로로 연결 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우선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사랑의 내부에 매복해 있다는 것도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채로 사랑은 본래의 얼굴을 잃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채로도 사랑을 했던 나 같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써 사랑을 소회시켜왔던 것이다.


p. 221-223.

Epilogue. 사랑함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은 왜 놀지를 않는지 이상해 보였고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들이 노는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옛 친구는 거의 멀어져가고, 새 친구는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정말 그게 어른의 삶이었다.

내가 조금 더 컸을 때, 나는 어른들이 사랑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피곤해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어른들은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 사랑을 고백하지도 않지만,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사랑에는 지나치게 열중했다. 사랑을 관람하는 일로 사랑을 대신하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정말 그게 어른의 삶이었다.

어른은 다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회복하는 힘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다치고 싶지 않은 어른이 이미 되어 있다. 다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전함만을 욕망해서는 안 된다고 매일매일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고 있다. 가까스로 힘을 내어서 내게 가능한 용기를 동원하여 사랑에 대하여 공부했고 그에 대하여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이 글들은 내가 사랑에 대하여 쓸 수 있는 이야기의 아주 작은 시작이면 좋겠다.

공부를 하다 보니, 사랑에 대한 개념을 정리한 책들은 참으로 많았다. 사랑은 남성 철학자들에 의해 전유되다시피 해온 개념이었다. 명저로 알려진 많은 책 속에서도 사랑의 개념은 배워야 할 것만큼 배우지 않아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런 개념 속에서라면,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고 부당하기까지 하며 이미 버려진 지 오래된 허구에 가깝다. 가부장제의 화신이구나 싶은 저자를 만날 때면 그 글을 진심으로 좋아하며 읽었던 지난날들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했던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나의 변화를 겨우 발견했다. 비참하기도 했지만 반가웠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사랑함에 대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함은 사랑과는 다른 얼굴이어야 한다. 사랑은 사랑을 재배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사랑을 돌아보고 돌보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을 사랑해온, 사랑을 명사로 고정하는 사랑의 담론들에 비켜서서, 사랑이 더 이상 감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게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학습해온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힘도 없다. 하지만 사랑함은 그렇지 않다. 삶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본인이 겪은 읽들, 그리고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아낸 문장들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나는 특히 마지막장, 이병률, 최승자, 페르난두 페소아, 이 세명의 작가에 대한 글이 참 좋았다.

감히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할 용기, 그것들을 감히 글로 써서 남길 용기, 그리고 나 같은 독자에게까지도 보여줄 용기. 김소연 작가의 용기에 나의 사랑을 담아 응원하고 싶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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